나는...
조금 더 지혜롭고 의지력이 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는 것 같다.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같은 사전적 의미의 지혜는 아니어도 상관없을 듯 싶다. 잘못된 판단, 말과 행동의 실수 등에서 찾아오는 후회를 줄이고 싶을 뿐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후회를 안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 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간다면, 앞으로 닥치게 될 대부분의 일과 사건에 대처하는 능력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후회없이 살자'라고 하는 내 좌우명에 더욱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인생 목적은 '잘 사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죽음을 앞둔 순간에 "이 정도면 후회 없이 충분히 잘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간혹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수치심을 느끼거나 후회하는 일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전체를 긍정할 수 있다면, 잘못된 지난 과오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족함이나 결핍에서 오는 '더 나아짐의 욕구'는 결국 '지혜를 갈구하는 순수한 배움의 욕망'을 이끌어내는 동기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인 팀 페리스가 몇 년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건강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을 만나서 벌였던 열띤 토론, 그들이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해 매일 실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벤치마킹 경험과 그들의 아이디어 전략, 창의적인 습관,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 창출법 등을 두루 담아낸 책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거인이라는 뜻에서 그들을 '타이탄'이라고 이름 짓고, 무엇이 그들을 정상에 서게 했는지, 다른 말로 정상에 서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 《타이탄의 도구들》인 것이다.
책에는 '타이탄들의 남다른 습관들' 중에서 타이탄 중 80퍼센트 이상이 매일 아침 어떤 식으로 든 '마음 챙김' 수련을 한다. 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명상을 삶의 중요한 연습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명언 '우리는 기대하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라, 훈련한 수준까지 떨어진다'을 마음에 품고 살며, 타이탄들이 명상을 하는 명백한 이유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빌리면, 우리가 잘 아는 영화배우이자 보디빌더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발표하는 앨범마다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글리치몹 밴드의 저스틴 보레타, 미국 최고의 운동선수이자 법학박사인 아멜리아 분, 수백만 독자를 거느린 작가 마리아 포포바 등등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타이탄들의 가장 일관된 패턴으로 '명상'을 꼽았다. 그들은 명상을 '인간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는 원천 기술'이자 '정신을 위한 따뜻한 목욕이다'라고 밝혔다.
위에서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건강해 지고 싶으면 좋은 식습관을 들이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면 된다. 공부를 잘 하고 싶으면 공부하는 시간을 늘이고, 공부에 매진하면 된다. 지혜도 마찬가지여서 도움이 되는 책을 읽거나 경험을 하면 된다. 멘토를 둘 수도 있고, 강연회에 참석할 수도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한다면, 과거 발생했던 일들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냉철하게 맞이하여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한다. 격앙된 감정을 숨기거나 삭이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해 버리고는 "이런, 또 실수했네. 아직 멀었어."라며 반성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또, "운동 해야지""명상 해야지" 결심하고, 계획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명상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명상을 시도한 적이 있다. 처음 몇 일간은 잘 이루어져서 마음과 1대 1로 조우하며, 나름대로 성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를 거둘 수 있었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그만두면서 애초 기대한 결과는 얻지 못했었다. 하지만, 명상의 가치를 알기에, 그때 이후로 명상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 언젠가 여건이 만들어지면 다시 도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열망과 반복된 노력은 성과를 올리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열망이 무엇인지, 그 열망이 키워나가야 할 정당한 가치가 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점검 결과, 노력을 기울일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면 서슴없이 실행에 옮겨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열망과 노력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이 잘못됐기 때문이지 열망이 불필요하거나 노력이 배반해서가 아니다. 즉, '정당하지 못한 가치를 가진 열망'이거나 '노력의 부족과 방향의 잘못'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의 좋은 글
안녕하세요. 김찌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으로 명상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구입한 책입니다. 명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을 다잡고,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책으로,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는데, 그 중에서 소개할 만한 내용이다. 싶은 문장을 골라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으나 지면과 시간의 제약으로 저자가 밝힌 핵심 내용을 알려드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또한, 이 책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은 명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진리와 깨달음, 명상의 효용' 나아가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하는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특정 종교를 찬양하거나 설명하는 책 또한 아니라는 것도 미리 말씀 드리면서 오늘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바꾸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종교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관심은 진리, 즉 깨달으신 분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을 행복으로 ,불순함을 순수함으로, 속박을 자유로, 무지를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고엔카 S.N. goenka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의 좋은 글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의 좋은 글
1)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어떤 것도 믿음 하나만 가지고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그것이 논리적인지, 실용적인지, 유익한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이성적으로만 따져 지적으로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유익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것이 진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붓다는 항상 강종하기를, 당신은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만 가르쳤으며, 다른 이들도 그런 지식을 계발하라고, 스스로의 권위자가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각자가 섬이 되어라. 자신을 안식처로 삼아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를 안식처로 삼아라. 그 외에는 어떤 곳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
2) 단 하나의 진정한 삶의 안식처이고, 단 하나의 밟고 설 수 있는 든든한 토대이며, 적절한 안내와 보호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유일한 의지처는 스스로 경험하고 확인한 진리, 담마,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붓다는 항상 그의 가르침에서, 진리를 경험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할 때 지침이 되도록,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 가르침은 안팎이 따로 있지 않다. 어떤 것도 스승의 주먹 안에 숨겨져 있지 않다." 그는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비밀교리를 두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는 자연의 법칙이 최대한 순수하게 널리 퍼져,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게서 유익함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3)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이 아무리 성스럽다 할지라도, 누군가를 해탈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해탈도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가장 중요하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들께 존경심이 우러나도, 그 존경심을 바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그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삶이 거의 끝나갈 즈음 과도한 존경과 찬양을 받게 되었을 때 붓다가 말했습니다. "이는 깨달은 자에게 제대로 영예와 존경, 숭배와 공경을 바치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담마의 길을 처음부터 마지막 목표까지 꾸준히 걷고 있는, 옳은 방법으로 담마를 수행하는 승려(비구와 비구니)와 남녀 재가수행자들이야말로, 깨달은 자에게 최고의 존중과 영예, 존경, 숭배와 공경을 바치는 이들이다."
4) 진리를 직접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외부를 바라보면서 사는 데 길들여져 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남들은 뭘 하는지 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정신과 신체적 구조를,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실체를 탐구하려고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모른 채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지가 얼마나 해로운지를, 얼마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면의 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이 어둠을 반드시 떨쳐내야 합니다.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붓다가 보여준 그 길은 자기성찰과 자기관찰의 길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마음과 인식이 들어있는 한 길 남짓한 이 몸속에서, 나는 우주, 우주의 시작과 중단, 그리고 중단으로 이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전 우주와 자연의 법칙들은 내면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오직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이 일어나든
그 원인인 반응이 있다.
모든 반응이 멈추면
더 이상 고통도 없을 것이다.
5) 진짜 깜마, 고통의 진짜 원인은 마음의 반응입니다. 한순간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반응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적됩니다. 반응이 순간순간 반복되어 매번 심화되면, 갈망과 혐오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첫 설교에서 붓다가 딴하 라고 한 것, 문자 그대로 설명하면 '갈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를 수 없는 것을 끝없이 바라는 동시에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불만을 갖는 정신적 습관입니다. 그리고 그 갈망과 불만은 그것이 클수록 우리의 사고방식, 언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더 많은 고통을 낳습니다.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반응들은 물 위에 그려진 선들과 같아서 그려지자마자 지워집니다. 어떤 반응들은 해변의 모래에 그려진 것과 같아서 아침에 그렸어도 저녁이면 파도나 바람 때문에 없어집니다. 또 다른 반응들은 끌과 망치로 바위에 새겨 놓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위가 풍화되면서 그것들도 사라질 테지만 그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씨앗과 열매
원인에 따라 결과가 일어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날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했으면 과보가 따를 것입니다.
한 농부가 같은 땅에 씨앗 두 개를 심었습니다. 하나는 사탕수수의 씨앗이었고, 다른 하나는 열대지방의 매우 쓴맛이 나는 님나무(neem tree, 인도멀구슬나무)의 씨앗이었습니다. 두 씨앗은 같은 땅에서 똑같이 물을 받고, 똑같은 햇볕 아래서, 똑같은 공기로 숨 쉬었습니다. 자연은 그들에게 똑같은 양분을 제공했습니다. 작은 두 식물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님나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님나무의 섬유는 쓴맛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사탕수수는 모든 섬유가 달콤함으로 채워졌는데 말이죠. 왜 자연은, 아니 당신이 원한다면 이렇게 말해봅시다. 왜 신은 어떤이에게는 정말 친절하고 다른 이에게는 잔인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지요. 자연은 친절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작용할 뿐입니다. 자연은 그저 씨앗의 성질이 드러나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모든 영양은 그저 씨앗의 성질이 발현되도록 돕습니다. 사탕수수 씨앗은 단 성질을 갖고 있으니, 그 식물을 심으면 단맛만 날 것입니다. 님나무 씨앗은 쓴 성질을 갖고 있으니, 심으면 쓴맛만 나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입니다.
농부가 님나무에 가서 절을 세 번 하고 주변을 백팔 번 돌고 나서, 꽃과 향, 초와 과일, 단 음식을 바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 님나무 신이시여, 저에게 제발 달콤한 망고를 주시옵소서! 저는 달콤한 망고를 원합니다!" 불쌍한 님나무 신 같으니, 그는 망고를 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지요. 달콤한 망고를 원한다면, 망고나무의 씨앗을 심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울고불고 애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얻게 될 열매는 오직 달콤한 망고일 테니까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무지는 그것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씨앗을 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님나무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둬들일 때가 오면 갑자기 정신을 차립니다. 달콤한 망고를 원하지요. 망고를 바라면서 울면서 기도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지요.
《자유에 이르는 삶의 기술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의 좋은 글
"우리는 여전히 현재 삶에서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문제들을 푸는 것,
반응하는 습관을 멈추고 고통을 멈추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지금 자유의 행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6) 무엇이 의식의 흐름을 일으킵니까? 붓다는 반응 때문에 그것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은 항상 반응합니다. 그리고 모든 반응은 마음이 다음 순간에도 계속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반응이 강할수록 그 원동력도 강력해집니다. 한순간의 미약한 반응은 의식의 흐름을 겨우 잠시 동안만 지속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순간적 반응이 갈망과 혐오로 발전되면, 그것은 강력해져서 의식의 흐름을 많은 순간 동안, 몇 분 동안, 몇 시간 동안 지속시킵니다. 그리고 그 갈망과 혐오의 반응이 더욱 심해지면, 며칠 동안,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에도 지속됩니다. 그리고 특정한 반응들을 평생 계속해서 반복하고 강화한다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올해에서 내년으로, 더 나아가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의식의 흐름이 일어날 만큼 강력한 원동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런 반응들의 원인입니까? 실제의 가장 깊은 차원까지 관찰하면서, 붓다는 그것이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반응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리고 우리가 반응하는 대상의 본질이 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영원하지 않고 개인이라고 할 많나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며, 그리고 이러한 존재에 대한 집착이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모르는 채, 우리는 맹목적으로 반응합니다. 우리가 반응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반응하고, 반응이 강화되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응하는 습관에 감금되는 것입니다. 무지 때문에 말이지요.
고통의 수레바퀴
무지가 일어나면, 반응이 일어난다.
반응이 일어나면, 의식이 일어난다.
의식이 일어나면, 마음과 물질이 일어난다.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마음)이 일어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일어나면, 접촉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면, 감각이 일어난다.
감각이 일어나면, 갈망과 혐오가 일어난다.
갈망과 혐오가 일어나면, 집착이 일어난다.
집착이 일어나면, 되어감의 과정이 일어난다.
되어감의 과정이 시작되면, 태어남이 일어난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일 일어난다. 슬픔, 애통함, 육체적.정신적 고통 그리고 고난과 함께.
이런 식으로 모든 고통이 일어난다.
담마 : 현상, 마음의 대상, 자연, 자연의 법칙, 해탈의 법칙, 즉 깨달은 자의 가르침. 붓다의 가르침
실라 : 도덕성, 말과 몸으로 하는 행동의 깨끗함
"모든 부도덕한 행위를 삼가고
도덕적인 행위를 하며
마음을 정화하라."
이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이니라.
7) 이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명쾌한 설명입니다. 악한 행동을 삼가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해롭고 유익한지, 무엇이 선한 일이고 악한 일인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각, 전통적 믿음, 기호나 선입견을 따르고, 그래서 누구는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구는 받아들일 수 없는 편협하고 종파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붓다는 그런 편협한 정의 대신 건전한 것과 불건전한 것, 성스러움과 죄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내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위, 즉 다른 이들의 평화와 조화를 돕는 행위는 성스럽고 건전한 행위입니다. 마음은 종교적 의식이나 지적인 활동을 통해서는 진정 정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 실제를 경험하고 고통을 만들어내는 무의식적 습관을 체계적으로 없애면 마음은 정화됩니다.
도덕적 행위의 가치
담마를 수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실라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 없이는 담마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해치는 모든 말이나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이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가 분열되지 않으려면 그런 태도가 필요하지요. 그러나 사실 그건 행위들을 삼가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독하기, 살인, 도둑질, 강간과 같은 불건전한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마음의 큰 동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갈망과 혐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갈망 혹은 혐오의 순간이 지금 불행을 가져오고, 미래에는 더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붓다는 말했습니다.
지금 불타고, 나중에도 불타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두 번 고통받는다.
지금 행복하고, 나중에도 행복하고,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두 번 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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