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원인과 조건이 있나? 그리고 모든 만남은 필연일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_류시화》
여러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하는 시, 다들 아시죠? 워낙 유명한 '시'라서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으실텐데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것 같습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암송하곤 했을거에요. 아래 사진은 저의 학창시절 앨범 첫 페이지에 써 놓았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입니다. 한 군데가 잘못되었는데, 아마 외워 쓰다 보니 암기를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이해해 주실거라 믿습니다^^
하~ 이 사진은 또 뭔가요. 시를 암송하고 편지를 즐겨 쓰던, 나름대로 풍부한 감수성을 지녔었던 고등학교 시절 찍었던 '컨셉 사진' 입니다. 동네 친구들과 집에 있는 자켓을 하나 씩 입고 나와 마을 뒷산에서 나름대로 자세(당시에는 이 폼이 멋있었다 생각했었나봐요^)를 잡고 찍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싱글도 아닌 더블 자켓에 검정색 슬랙스(당시에는 '기지바지'라고 불렀었죠.)에 검정 구두를 신었는데 양말색이 흰색인 게 참! 인상적입니다^^
아~ 그리고 눈썹! 이게 남자한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에 말이죠. 역시 유전자의 힘은 위대합니다. 울 아버지와 아들 녀석 그리고 저, 이렇게 삼 부자는 눈썹에 붙어 있을 카락이 머리로 옮겨 와서, 머리숱은 굉장히 많고, 눈썹은 굉장히? 적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8~9년 전, 반영구눈썹문신을 한 덕에 보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까맣게 라인이 드러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찌가 여자친구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았었는데, 만약 눈썹마저 짙어 매력이 더 했다면ㄷㄷ, 정말 아찔할 뻔 했습니다.(ㅋㅋ) 절대 농담이고요. 웃자고 드리는 얘기입니다^^
손가락을 풀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갑자기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언급한 것은, 오늘 소개 해 드릴 책이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의 주인공은 시가 아닌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제5장 <누구도 우연히 오지 않는다>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_류시화》
누구도 우연히 오지 않는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대학 2학년 때의 초여름,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다가 국문과 후배(훗날의 이산하 시인)와 마주쳤다. 어디 가느냐는 그의 질문에 '학기말 시럼을 치르러 간다.'고 대답하자, 그는 특유의 묘한 입 모양을 지으며 "선배도 시험을 쳐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요."하고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자못 충격적이었다. 같은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은 시험 같은 현실적인 일에 맞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그는 그 말을 더닞고 가 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인간관계에도 원인과 조건이 있나? 그리고 모든 만남은 필연일까?
그길로 캠퍼스를 나와 도보 여행을 떠났다. 물론 시험을 보지 않아 낙제를 해서 2학년을 다시 다녀야 했다. 그 여름 뙤약볕 아래 길가 과수원의 복숭아를 주워 먹으며 다닌 두 달 동안의 도보 여생은 삶과 문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발은 낡아 밑창이 너풀거렸지만 내가 걸어갈 길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시 쓰기에 전념해 그해 겨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왓다. 알 듯 모를 듯한 후배의 한마디(이산하 시인은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가 많은 것을 바꿔 놓은 것이다.
졸업 후 중학교 임시 교사가 된 나는 문학에 몰두해야 할 시간에 자음접변과 두음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괴로웠다. 랭보는 스무 살이 되지 전에 대표시를 썼는데 서른 살까지만 살기로 한 나는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 교사와 저녁을 먹으며 고뇌를 말했더니, 그는 '석 달만 지나면 그런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감자탕 속 통감자를 건져 먹으며 말했다. 내게는 그 말이 '석 달 후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다음 날 사표를 내고 개나리 꽃 만발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왔다. 한 달도 못 채웠기 때문에 월급은 사양했다. 더 늦기 전에 선배 교사가 내 삶의 방향을 튼 것이다.
그 후 생계비를 해결하느라 다시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한 끝에 나 자신이 사회부적응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직 생활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두통이 심해 매일 출근은 늦고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는 건 힘들었다. 결국 몇 개월 만에 자발적인 추방자가 되어 무직자로 거리를 떠돌았다.
당시 서울 종로2가에 종로서적이 있어서, 수도승이 사원을 중심으로 떠돌 듯 그곳을 기점으로 반경 100미터 내외를 온종일 걸어 다녔다. 다리가 아프면 서점에 들어가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아는 체를 했다. 시 동인 활동을 하던 시절, 동인지를 출간한 출판사에서 나를 한 번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내 시가 아니라 내 외모에). 화장실에서 그런 인사를 받으니 나 또한 그가 인상 깊었다.
그날 화장실 앞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불교 잡지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리타분한 내용 대신 명상과 영성을 이야기하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내 의견에 그는 동의했으며, 그래서 함께 힘을 합해 새로운 계간지를 내기로 결정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중 50분은 나 혼자 흥분해서 주장을 폈다.
우리가 만든 잡지는 비록 발행 부수는 미미했으나 구도자들과 영성 추구자들 사이에서 금방 화제가 되었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이뤄 낸 의미 있는 성취였다. 잡지의 내용을 기획하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인도의 다양한 영적 스승들을 알게 되고, 내 삶이 인도라는 나라로 방향을 돌리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
잡지사를 그만둔 지 얼마 후, 서울 변두리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사람과 마주쳤다. 잡지사 일을 할 때 잠깐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얘기를 나눴고, 버스를 함께 내려서도 얘기를 이어 갔으며, 내가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도 잊은 채 대화에 몰두하다가 우리 사회의 명상과 영적 추구에 대한 책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견이 일치했고, 마침내 함께 출판사를 열기로 길 위에서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 그는 발행인이 되고 나는 편집장이 되어 '정신세계사'라는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은 내가 명상서적을 소개하는, 평생에 덜친 작업에 뛰어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들이 아니었다면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갔을지, 내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여전히 사회 부적응자로 서점 주변을 떠돌았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설가 보르헤스는 썼다.
"우리 삶을 스쳐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어딘가에 나에게 정해진 섭리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적절한 사기에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의 내 삶에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온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 삶에 나타나고, 지금의 나는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모든 만남과 부딪침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내가 걷는 길을 무작위로 교차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도 원인과 조건이 있나? 그리고 모든 만남은 필연일까?
여기, 인생의 만남에 관한 작자 미상의 글이 있다.
"당신의 삶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 한 계절에만 등장하는 사람, 혹은 평생 동안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면, 저마다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 당신의 삶에 온 경우, 그들은 대개 당신이 드러내 보인 필요를 충족해 주기 위해 온다. 당신이 고난을 통과하도록 돕고, 길을 안내하고, 지지해 주려고 온다.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당신을 도우려고 온다. 그들은 신이 보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며, 실제로도 그렇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그 이유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당신 잘못이 전혀 없는데도, 혹은 좋지 않은 시기에, 관계를 끝낼 것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죽거나 어디론가 떠나 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해서 당신이 분명한 결단을 내리게 만든다. 이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것, 우리가 바라던 것이 채워졌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올려 보낸 기도는 응답받았으며, 이제는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한 계절 동안만 당신 삶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나누고, 성장하고, 배우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가져다주고 당신을 웃게 할 것이다. 당신이 한 번도 경험한적 없는 일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당신에게 준다. 이것을 믿으라. 이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 계절 동안만.
평생의 관계는 당신에게 평생의 배움을 준다. 굳건한 감정적 토대를 갖기 위해 당신이 쌓아 나가야만 하는 것들을. 당신이 할 일은 그 배움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관계에서 당신이 배운 것을 주변의 모든 관계와 삶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맹목적이지만 진정한 우정은 천 리 밖을 본다는 말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사람을 넓고 다양하게 만나지 않는 내게 주변의 지인 한 명, 한 명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지금까지는(위 글을 읽기 전까지) 그저 고맙고, 중요한 사람들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이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 사람들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가르는 시점이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내 앞에 나타난 이 사람들은 내가 내린 결정에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이상 행사 할 영향력이 없는 사람은 떠나서 추억의 사람이 되고, 여전히 곁에서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주변 사람들의 등장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면, 이 세상에 '악연'은 없다고 봐야할까? 어떤 사람은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등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행복, 기쁨, 즐거움,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고, '악연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마저도 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이 사람들을 내 앞으로 이끌었는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관계에도 원인과 조건이 있나? 그리고 모든 만남은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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