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아하! 그렇군요~ 《오우아 : 나는 나를 벗 삼는다》에서,,

 

 

 

 

어느 것이든 생명 있는 존재가 아니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한다. 인간만이 도덕적 능력을 지닌 고귀한 존재이며 이 세상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연을 쉽사리 파괴하고 새와 짐승을 쫓아내 그 자리에 건물을 쌓아 올린다. 강물을 막고 기름을 흘러내려 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를 죽게 만든다. 인간과 다른 생명을 차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도 구별 짓는다. 지위와 신불을 따져가며 권력을 휘둘러 약자를 함부로 짓밟는다.

 

  박제가는 존재의 평등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이다. 그는 능력이 뛰어나고 재능도 남달랐지만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삶을 살았다. 열한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차별받았다. 그는 차등을 두어 구별하는 현실에 고통받으면서 존재의 본질에 깊이 고민했다. 

 

  박제가는 스물넷 살이던 1773년 봄에 금강산 여행을 갔다가 동해에 고기잡이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드넓은 바다와 그물에 잡힌 수많은 물고기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상념에 젖었다. 저 배들이 다니는 곳은 바다 세계의 한 모퉁이일 뿐이며, 그물에 잡힌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은 바다 해산물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본 것이 적은 사람은 상어와 전갈의 눈알만 보고도 휘둥그레지며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온 학자는 고개가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자주 보고 익숙해지면 용이나 코끼리도 괴상하지 않게 되지만, 생전 처음 볼 때는 새우조차 놀라운 사물이 된다. 본 것이 적기에 이상하게 여길 뿐, 세상엔 온갖 다양한 생명들이 각자 방식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그는 예전 일이 떠올랐다.

 

 

  나는 예전에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다가 그 반을 차지하는데 마른 세계와 젖은 세계가 있어, 강한 성질과 부드러운 성질이 나뉜다. 물과 뭍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은 마치 호두가 올록볼곡한 것과 같다. 그러니 위아래가 완전히 다르지만 인어가 있을 수 없고, 저승이 이승과 다른 세계라지만 기운을 지닌 존재가 없을 수 없다.

  기어 다니는 벌레나 날갯짓하는 곤충도 각자 자기 고유의 모양을 갖고 있다. 어미 뱃 솏에서 낳든, 알에서 낳든, 스스로 변해서 낳든, 그 어느 것이든 생명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어쩌다가 물고기로 태어나고, 어쩌다가 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와 다르다고 하여 무리 지어 비웃고 또 업신여긴다. 작은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엿보고, 틀에 박힌 식견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따진다.

박제가 「바다 고기잡이

 

 

  세상은 드넓어서 인간의 경험과 지각이 미칠 수 없는 곳이 참 많다.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인어가 없으리란 법이 없으며 저승에도 생명체가 살지 말란 법이 없다. 그 광대무변의 공간에서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박제가는 꽃이든 지렁이든 물고기든 나비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각자의 모양대로, 각자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 된 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어쩌다 보니 물고기로 태어났고,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났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편협한 지식으로 자신이 본 것만을 옳다고 우기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비웃고 쫓아낸다. 고작 작은 몸에 남보다 문자 몇 개를 더 아는 것으로 잘난 척 뻐기고 다른 생명을 함부로 업신여긴다. 지위와 신분을 깊이 따지고 힘없는 자들은 무시한다. 남에겐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면서 스스로는 남을 도울 작은 마음도 갖지 못한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세상의 다양한 방식을 판정한다.

 

  그러나 박제가는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 고기에겐 흐르는 물이 밟고 다니는 땅이고 새에겐 허공이 믿고 의지하는 곳이다. 그러니 물고기가 밑으로 내려가 의지하는 것은 사람들이 우물을 파서 먹고사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지느러미에 햇볕을 죄는 것은 인간이 일광욕을 하는 것과 같다. 물고기가 사람을 본다면, 오히려 인간이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 곧 죽게 되리라 생각할 것이다. 깨달음이 여기에 이르자 박제가는 한바탕 크게 웃고 소매를 떨치며 일어났다.

 

 

  나는 이에 시원하게 웃을 터트리고 소매를 떨치며 일어났다. 하늘 끝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만물의 처음과 끝을 생각하는데, 마음속 아득함이 끝이 없더니 얼마 못 가 생각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로소 지극히 큰 것은 다 말할 수 없고, 지극히 많은 것은 이치로 따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박제가「바다 고기잡이」

 

 

  비로소 박자게는 지극히 큰 것은 다 말할 수 없고, 지극히 많은 것은 이치로 따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모든 생명은 각자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누에는 열심히 고치를 짓고, 벌은 부지런히 꿀을 모으고, 농부는 열심히 농작물을 살찌우고, 나 같은 사람은 열심히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 벌은 꽃을 만나 꿀을 만들고, 바람은 나뭇잎을 만나 소리를 만들고, 나는 너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렇게 우주는 존재와 존재가 어울려 살아간다. 그러니 모든 존재는 하늘의 입장에서는 평등하다. 각자 쓸모가 다를 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각자의 모양대로,

각자 방식으로 살아간다.

 

 

아하! 그렇군요~ 《오우아 : 나는 나를 벗 삼는다》에서,,

 

 

책은 공기다. 읽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