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 지은이는, "매일 기록한다는 건 하루도 자신을 읽어버리지 않는다는 말과 같아요."라며 무엇이든 매일 기록하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중요한 것들은 정작 따로 있는데,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불행해진다고. 그런 마음을 안고 살지 않기 위해, 나한테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어디든 적어두어야 했다고 고백합니다.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하루가 촘촘해질 테니까요. 

  기록해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까요.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순 없으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지겠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기만의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겪게 됩니다. 하루가 촘촘해질 테니까요. 기록해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까요.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 말하는 '기록'은 적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남기는 등 어떤 식으로든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모든 시도를 기록이라 여기며 썼습니다. 기록은 메모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때그때 적어둔 메모가 한 알 한 알의 구슬이라면, 기록은 그것을 꿰는 일에 해당하니까요. 낱개의 메모보다는 한 가지 주제로 일관된 기록을 이어나가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1, 2장에서는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3장은 일하는 자아로서 기록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4장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썼습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최대한 기록의 다양한 형태를 담으려 했을 뿐, 제가 이 모든 걸 꾸준히 하는 것도, 모두가 이렇게 종류별 기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기록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 주고, 삶이 건네는 사소한 기쁨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최대한 기록의 다양한 형태를 담으려 했다는 말이 인상 깊고 '기록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 준다는, 삶이 건네는 사소한 기쁨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다는 말'이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아래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목차입니다. 이어지는 글은 기록하는 법 두 번째 장 <순간을 수집하기로 했습니다>의 한 꼭지인데요. 우리의 마음이 저자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전혀 다르지도 않을 겁니다. 기록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사소한 기쁨을 알아챌 수 있게 돕는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가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상당 부분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의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은이는 우리가 책을 단순히 수긍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나 역시, 무엇이라도 기록하고 싶다""일기를 쓰고, 일상을 기록해야겠다"라고 결심해주기를 바라면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집필했다고 여겨져요. 또 다른 목적이 없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은 일단 성공입니다. 제게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메모와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다이어리도 여려 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자꾸 잊어버리는 통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메모를 안 하고 있군!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못하고 있군!'라며 반성하곤 했는데 다행히 좋은 책을 만나 '다짐'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_김신지》

<목차>



기록하는 법 두 번째, 순간을 수집하기로 했습니다.


나만의 반복되는 역사 기록하기.

지난주엔 5년 다이어리를 펼쳤다가 활짝 반가워졌습니다. 작년 이맘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처음 보러 왔더군요. 회사 점심시간을 틈타 공인중개사(명함에 적힌 이름이 '김연수' 씨여서 아직도 기억합니다)와 함께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4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창과 나무가 있는 풍경에 한눈에 반해 (다소 무모하게도) 바로 그날 저녁에 살고 있던 집을 내놓고 구두로 가계약을 했던 이야기가 모두 적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때만해도 남의 물건으로 가득 차 있던 집의 거실에 앉아 내 화분들에 둘러싸여 일기를 쓰고 있자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집에 오게 된 후로 새로이 하게 된 기록을 떠올렸습니다. 창밖으로 너른 하늘과 푸른 나무가 보이는 '뷰 맛집'에 사는 도리를 다하기 위해 시작한 기록, 바로 매일 아침 거실 창문을 열고 그날의 창밖 풍경을 기록하는 일이에요.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알아챌 수 있도록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매일아침하는'이라는 이름으로 쌓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매일'이라고 이름 붙인 게 무색할 만큼 매일 찍지 못하는 게 큰 함정이지만, 맑거나 흐리거나 비 오는 날들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단풍으로 변하는 나무의 시간들이 마치 물감이 번져나가듯 피드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 무용해 보이는 기록의 목적은 하나뿐입니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에요. 시간은 많은 것을 빛바래게 할 것이고 10년, 20년이 지나면 지금 이곳에서의 날들은 희미한 추억으로만 남겠죠. 그때 그 집에 살았던 것 참 좋았지, 창밖 풍경이 근사했지, 하고요. 20대 내내 옮겨다닌 숱한 방들, 아무리 좁고 낡았어도 그 방들을 떠난 뒤에 저는 늘 그곳에서 보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으니까요. 신림동의 창가에선 주인집 마당의 감나무가 보였던 것, 안암동 3.5층짜리 낡은 방에선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모든 소리가 흘러들어 오곤 했던 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단편적일 뿐이어서, 그 방은 이제 희미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어서, 가끔 생각합니다. 왜 어딘가에 살고 있을 땐 정작 방을, 창밖을, 생활을 찍어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하고요. 그러니 난생처음 창 너머 근사한 풍경을 갖게 된 이 집에서는 마땅히 기록을 시작해야 했어요. 먼 미래에 내가 좋아하리란 걸 분명히 알아서, 미리 선물을 고르는 마음으로 창밖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로 살아서 할 수 있는 기록들


  이 같은 기록은 '나 만의 반복되는 역사'를 쌓아가는 일이에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건 멋진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로 살아서 할 수 있는 기록이자, 나밖에 할 수 없는 기록이니까요. 그래서 종종 비슷한 마음에서 출발해 다른 종류의 길 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속으로 반가움의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우연히 흘러든 블로그에서 여행지의 숙소만을 모아둔 기록을 보았어요. 여행의 기록은 흔히 '2015 방콕', '2016 홍콩'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모아두던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 그 블로그의 주인은 '체크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그동안 머물렀던 여행지의 숙소들을 기록해두고 있더군요. 105, 702 등의 호수가 적힌 문, 벽에 걸린 액자나 말린 꽃 같은 소품들, 창가에 섰을 때 보이는 풍경···. 그런 것들이 나라마다 도시마다 비슷한 듯 달랐습니다. 근사한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서너 개의 숙소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었거든요. 이 기록의 주인은 사진을 들춰볼 때마다 그때 그 시간, 그 방으로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기분이 들 거라는 걸. 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그 많은 숙소들이 하나의 기록으로 모여 있다면? 아마도 저화소의 옛날 카메라로 첫 번째 기록을 시작했던 날의 나를 칭찬하고 싶어 지지 않을까요. 앞으로 묵게 될 내 인생의 모든 숙소를 기록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제 친구 D는 '오늘의 노을'을 꾸준히 모읍니다. 저 역시 노을 지는 풍경을 좋아해서 어디서든 노을을 목격한 날엔 꼬박꼬박 찍어두는데요. 흩어져 있는 사진들을 모아 '#오늘의노을'이라는 해시태그로 혼자만의 노을 아카이빙을 한다면 근사할 거라 생각한 지 오래인데,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노을 사진과 함께 노을을 본 장소, (있다면) 함께 본 사람, 나누었던 대화 등을 간략히 적어둔다면 좋을 텐데요. 5년 다이어리와 마찬가지로 그 기록이 모여 1년이 되고, 2년이 된다면, 혹여나 운이 좋고 지구력이 좋아 평생이 된다면 저는 무려 '오늘의 노을'에서 '평생의 노을'을 기록한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지난해부터 새롭게 시작한 기록에는 '차박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저의 차박 메이트인 남편 강에게 외주를 주었습니다. 차박을 떠날 때 늘 가지고 다니는 캠핑 의자가 어떤 풍경을 배경으로 놓여 있었는지 두 사람만 보는 비공계 계정에 쌓아가는 거예요. 다른 멋진 풍경도 많을 테지만 의자의 뒷모습을 택한 건, 우리 두 사람이 그때 그곳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었는지 기억해주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것은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일 때도, 해 지는 바닷가일 때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의 강가일 때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몇 장 되지 않지만, 이 기록 역시 꾸준히 쌓인다면 두 사람만의 캠핑 역사가 되겠죠.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이럴 때도 있었지' '이때 참 좋았지' 얘기하는 추억이 될 거예요.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할 걸!'은, 자신의 인생을 조금, 한 번만이라도 성찰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가장 흔한 '후회의 말'이면서 죽음을 앞두고 더이상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는 단계에서 하게 되는 가장 큰 후회라고 합니다. 

  김찌는 거의 매순간(항상이라고 하기엔 가끔 잊을 때가 있어서) 죽음을 염두에 두려고 노력합니다. 좌우명과도 연결되어 있는 '죽음의 순간'에 내가 품게 될 마음과 생각에서 가급적이면 '후회(모든면에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죠. 


  아흔 살 까지는 살 것 같아 단계별로 목표와 소망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 생각일 뿐,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일을 예상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잘 알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는 것처럼, 오늘 내가 한 일들이 나를 만들고 삶을 완성하는 것이기에, 나의 '완전한 삶'을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예쁘게 핀 개나리를 보고 '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속에서 '예쁘다'는 감정이 일기 전에 어떤 느낌의 노란색인지 충분히 느껴 보고 기록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해, 그 자리에서 다시 핀 개나리와 비교해 보는 거죠. 그러면 알수 있을 겁니다. 그때 그 개나리와 오늘 내 앞의 개나리가 어떻게 다른지를요. 지난 해에 피었던 노랑 개나리가 지금 눈 앞에서 빛이 바래졌다면, 이건 개나리보다는 지금 내 마음에서 연유한 것일 수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심정, '이쁨'을 '이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때 낀 마음'이 원인일 수 있어요.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해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으신 분들, 이 글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평화롭게 한 상태에서 고요하게 바라보는 노력을 하는 건 어떨까요. 세상 만물의 고유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겁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거죠. 이렇게 세상 만물과 소통하면서 삶을 완성해 가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자가 말하는 기록의 두 가지 장점인 '중요한 것의 일깨움',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록하기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에요. 저는 믿습니다.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