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내성적인 사람의 행동<달라보이지만 결국엔 같습니다>


김찌는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었습니다. 앞에 나서서 행동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내성적인 성격이었죠.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저를 보고 느낀 바지만) 말수가 적으며, 앞장서는 법이 없습니다. 말 하기 보다는 듣기를 더 좋아하고, 듣고 있을때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줄을 서도 중간 아니면 뒷줄에 머무릅니다. 어떤 일을 차례대로 하거나 순서가 필요할때도 마찬가지로 중간이나 뒤쪽에 위치합니다. 나서는 것을 꺼려하고, 묻혀있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도 앞장설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이었습니다. 같은반에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앓다가 마침내 고백을 하였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뒤에서 걸어오는 그 아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그 아이의 이름이 김 선이었습니다)

"나는 선이를 좋아한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그 아이, 주변에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미술시간으로 기억합니다만, 크리스마스 카드였나? 편지였나? 만들고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 만든 사람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줘도 돼요."라는 선생님 말씀이 있으셨습니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OO이 왜 일어났어? 편지 주려고?" 물으심에

"네 선이에게 편지 주려고요." 하였습니다.

"그래, 가서 주고 와."라는 선생님 말씀에

터벅터벅 걸어 선이 자리에 도착한 저는 말없이 편지를 책상위에 내려 놓고,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스타트를 끊자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순간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부끄럽지도 않았고,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선이에게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성적인 사람도 가끔은 매우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중학교 3학년때 친구집에 놀러갔을때의 일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왔음에도 어떤 여자아이와 전화를 계속하였습니다. 제가 '궁시렁궁시렁'거리니 그 친구가 사진 2장을 보여줍니다. 뭔가 하고 봤더니, 너무나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의 사진이었습니다. 연예인외 그렇게 이쁜 아이를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사진2장과 전화번호를 얻은 후 서둘러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떤 말을 할지 정리한 후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OO친구 OO인데, 사진의 네가 너무 이뻐 친구맺고 싶다. 그래서 전화했어."라고 말하였고, 꽤 긴 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통화를 하고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둘다 음악과 노래부르기를 좋아해서 수화기를 통해 서로의 노래를 듣고, 좋은 음악을 소개시켜 주면서 중3 여름방학을 재밌게 보냈습니다. 또 그 아이와 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으로서 각자의 방을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하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친구가 제게 보냈던 첫 번째 편지입니다. "참. 오늘밤 꿈에는 '주노형'이랑 얘기를 했어. 아주 많이. 너 데리러 가려다가 말았어. 잘못한 짓이니?"라는 내용입니다. 당시 저는 서태지와 아이들중에서 이주노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일 주일 전이었습니다. 

"나 숙제를 하나도 못했는데, 도와주라. 그런데 숙제가 무지 많다"는 말에

"걱정 말고 숙제 다 가지고 와라. 친구들 불러서 해줄테니까 얼른 오기나 해라."고 말하고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OO가 숙제를 못했다고,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해 줘야 겠다. 그러니 빨리 와라."

친구들이 집에 오고, 얼마 후 "버스에서 내렸어. 그러니 빨리 데리러 와."는 말에 저는 가지 않고, 친구 녀석들을 모두 버스정류장으로 출동시켰습니다. (이때 분위기는 단순히 데리러 가는 수준을 넘어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비상한 각오를 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좀 우습죠^^) 친구들을 보내고 간단한 치장과 방청소를 하였습니다. 실물을 처음 보는 날이었기에 약간의 긴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그렇게 시간을 보낸 이후 개학을 하고 각자의 학교 생활에 충실하면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날, 시험 잘 보라고 초콜릿을 샀고, 방과후에 갈테니 기다리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 그 친구가 처음으로 제가 다니는 학교에 오게 된 날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도착한 8시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으로 학교가 매우 조용할 때였습니다. 조용히 학교 주변을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보여주기 위해 뒷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정적이 깨지면서 반 친구들이 뒤돌아서 저와 그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좀 멀쓱하기는 했지만, 아무일 없다는 듯이 비어있던 의자에 나란히 앉아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냐고 묻는 친구들에겐 간단히 소개도 시켜주었습니다. 잠시후 교실을 빠져나온 우리는 중학교 옆에 있던 초등학교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친한 친구 녀석들이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에 와서 뭐하냐며, 빨리 소개시키라며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명 한명 소개시켜주었고, 그렇게 그날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그 애가 OO에 누구다."라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많은 부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찌는 어렸을때부터 운동을 잘 했고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6학년 1학기때까지 '학교 육상부'로 활동했고, 비공식적이었지만 배구부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육상대회에서는 몇 차례의 2등과 여러번의 입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때까지 자칭,타칭 "공을 제일 잘 차는 아이'로 지냈습니다.한동안은 내가 축구를 했다면 우리 나라가 2002년 월드컵에서 4위의 성적에 머무르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진심으로)을 했습니다. 그 만큼 축구를 좋아했고,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축구할 때만큼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모든면에서 능동적이고 활달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또, 고등학교 기간 내내 친목서클의 회장을 맡아 관리하는등 앞에 나서야 했고, 적극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몇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의 행동<달라보이지만 결국엔 같습니다>


처음 직장에서 23세~32세때까지 근무했습니다. 30세에 관리과장이 되었고, 32살 퇴사할때까지 최고관리자로 근무했습니다. 직원수 20명 정도의 소기업이었지만, 대목기간이었던 4개월 정도는 직원과 아르바이트를 합쳐 60~70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기도 했습니다. 대표 부재시엔 대표를 대리해서 외부 손님을 맞고, 직원과 아르바이트 채용등에서 거의 완전한 권한을 가졌었고, 1차 협력업체와의 계약이나 협력업체의 교체등 잘못하면 회사에 엄청난 불이익을 초래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말단직원에서 시작하여 최고 관리자가 되기까지 9년의 시간은 직장인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거의 최상위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떤 생각(각오,비젼)이 드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정도까지는 적성에도 맞아야 합니다. 또,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때 가슴속에 항상 독기를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상위 리더는 회사의 불이익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의 언제나 최선을 다합니다. 제 경험이기때문에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나 OOO이가 있는 회사인데, 최소한 업계 최고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였고, 자신감도 충만한 시기였습니다.


32세때를 마지막으로 저를 드러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자존심과 자신감을 내세울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맞게 조용하게, 중간 어디쯤에서 묻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올 봄쯤?) 내면에서 부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결심을 넘어 운명처럼 다가옴을 느낍니다. 나와 같은 생각,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독서모임을 찾고, 없으면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숨죽여 있던 내 안의 욕망이 서서히 타오르고 있음이 온 몸에 전해집니다. 


어린시절 내성적이던 아이가 사랑을 고백하던 방식이나 서클의 회장역, 반의 체육부장역, 축구의 주장역과 최고관리자로서 보이던 그 모습은 지금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모습이고, 궁극적으로는 같은 길이 될 것입니다. 행동에 주저함이 있거나 결과를 의심하는 일이 대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 때를 만나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쯤되면 내성적인 성격이 오히려 큰 장점이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 3일간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으로 향후 구입해서 읽어야 할 책 목록입니다. 오늘도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2~3권의 책이 추가될 것입니다. 모두 과학서적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을때는 네이버검색은 기본이고, 네이버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나무위키, 유의어사전등을 동원하여 공부하듯 읽어야 하고, 재독, 삼독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지식이 확장.연결되고 나만의 관념으로 자리잡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념을 구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 쓴 글이 실용,교양서 일 것입니다. 



김찌가 쓰고 싶은 장르는 문학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과 소설을 접목해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이나 지혜를 내포하면서도 읽는 즐거움과 감동을 놓치지 않은 책입니다. 내성적인 김찌는 오늘도 조용히 독서 할 것입니다. 생각나는 이야기거리가 있으면 블로그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할 때 만큼은 결코 조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란하지는 않더라도 과감하고 거침없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성격보다는 인간의 본성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외향적 성격과 내성적 성격도 결국에는 인간본성을 다루는 한 가지 분류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작은것을 잦게 표출하느냐, 큰것을 뜸하게 표출하느냐의 차이일 뿐 사람의 모습은 엇비슷해 보입니다.


일어날 일은 의례 일어나는 법입니다. 


내성적인 사람의 행동<달라보이지만 결국엔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