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


안녕하세요~ 김찌입니다. 올 해 열심히 사셨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셨을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 작품인 <모나리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모나리자>는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작품인데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몰라도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이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3~1506년, 목판에 유채, 77*53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에서 '모나(Mona)'는 유부녀를 뜻하는 말이고 '리자'는 엘리자베타의 약칭입니다. 엘리자베타는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나서 16세 때 사업가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 느와 결혼한 실존 인물입니다. 즉 모나리자는 엘리자베타라는 여인의 초상화인 것이죠.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하늘나라로 떠나자 엘리자베타는 큰 슬픔에 빠져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남편 프란체스코는 슬픔에 잠긴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궁리를 거듭한 끝에 레오나르도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당시 레오나르도의 명성은 드높았습니다.)


"레오나르도 선생, 내 아내를 그려 주시오. 어린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오. 당신은 빼어난 그림으로 아내를 위로해 주고 싶소.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평생의 은인으로 삼겠소." 

"걱정 마십시오. 당신의 아내를 위해, 당신을 위해 열심히 그려 보겠습니다."

엘리자베타를 향한 프란체스코의 지극한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 레오나르도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위대한 걸작 '모나리자'는 이렇게 두 남자의 고결한 마음이 만나 탄생한 그림입니다.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리고자 한다면 흐린 날씨이거나 노을 지는 저녁 무렵에 그리는 게 좋다. 해가 저물어 가는 거리를 보라. 날씨가 흐릴 때, 남녀의 얼굴에 깃든 온화함을 보라. 저녁 무렵이나 날씨가 흐릴 때 사람들의 얼굴들을 관찰해 보면 햇살에 노출되어 있을 때보다 부드럽고 우아해 보인다. 해가 비치면 차양으로 가려야 한다.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저녁 무렵이나 흐린 날에 그리는 것이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리자(엘리자베타)는 그날부터 레오나르도의 작업실로 찾아왔습니다. 리자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숙하고 기품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레오나르도를 만나던 날, 리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리자를 본 레오나르도의 표정도 영 신통치 않았습니다. 리자의 장신구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부유한 집안의 여인들은 화려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레오나르도는 그것이 못마땅해 인상을 찌푸렸던 것입니다. 화려한 장신구가 사람의 본 모습을 감춘다고 생각하는 레오나르도의 마음을 읽은 리자는 얼른 장신구를 빼 버리고 레오나르도 앞에 섰습니다. 여인으로서 장신구를 뺀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화가에게 맡긴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르고 순수한 리자의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저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지?"

 또 한편으로 레오나르도는 리자의 표정이 너무 어둡고 침울해서 시를 읊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으면 때로는 악사를 불러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때까지의 전통으로 보면 초상화는 주로 사람의 옆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그러한 전통을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리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그 생김새와 곡선이 제대로 보이고 표정 또한 가장 잘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나리자의 시선은 정면입니다. 아름답고 고결한 리자는 레오나르도에게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어머니의 미소를 생각하면서 이전까지 다른 초상화를 그릴 때보다 더 깊은 통찰력과 세련된 기법으로 '모나리자'를 완성한 것입니다. 


<모나리자>에 나타난 레오나르도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물의 배경을 웅대하게 표현해서 주인공이 그 배경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화면 아래쪽에 위치해 안정감을 조고 있습니다. 또한 뒤에서 은은한 후광이 비치도록 해 주인공을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얼마나 열심히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에게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다가 미완성으로 남겨 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나리자>는 500년인 지나는 동안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마지막 후원자였던 프랑수아 1세가 간직했다가 나중에는 나폴레옹의 침실에 걸려 있었으며 오늘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전기 작가 바사리는 <모나리자>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여인의 촉촉한 눈빛은 광채를 발하며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여인은 붓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피와 살로 빚어낸 창조물처럼 보입니다. 여인의 목덜미를 가만히 보면 맥박이 뛰는 연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인의 신비한 미소는 지상보다는 천상에 속한 여인이 짓는 미소처럼 보입니다. 생생한 그림을 본 사람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기적이 탄생했노라고 말합니다." 


또한 바사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가진 예술성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하늘의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재능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별처럼 신성해서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스스로 빛을 발합니다. 그가 만드는 것은 신의 손을 빌려 지은 것으로 도저시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모나리자의 모델과 눈썹 그리고 미소

모델이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한 의견으로는 부유한 상인의 아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지만, 개중에는 레오나르도 자신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습니다. 이 또한 여러 의견이 있는데, 그 무렵에는 넓은 이마가 유행이어서 눈썹을 밀었으리라고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나리자의 미소입니다. 모나리자는 슬픈 듯 기쁜 듯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그윽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봅니다. 마거릿 리빙스턴이라는 하버드 대학교수는 모나리자의 미소에 대한 재미있는 발표를 했습니다. "모나리자를 똑바로 쳐다보면 신비한 미소가 사리지며, 눈과 같은 모나리자의 다른 부분을 보면 미소가 뚜렸해진다." 

그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이렇게 보는 각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는 것은 눈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눈이 사물을 볼 때는 중심 시야와 주변 시야를 사용하는데, 중심 시야는 사물의 정밀한 부분을 보는 데 뛰어나지만 그림자 부분을 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보일 듯 말 듯 한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는 중심 시야보다는 주변 시야로 가장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점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


아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작품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입니다. 못 말리는 호기심 덩어리였던 레오나르도는 우연히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서'라는 책에서 인체 비례에 관한 구절을 읽고 직접 사람을 눈금자로 잰 끝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확한 신체 비례를 측정해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이른바 '황금비'인 것입니다.


사람의 두 팔을 벌린 길이는 키와 같고, 두 다리를 키의 4분의 1 정도로 벌리고, 팔을 위로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정수리 높이까지 올린 다음 각 손끝과 발끝을 잇는 원을 그리면, 그 중심을 배꼽이 되며 배꼽과 두 다리 사이의 공간은 정확한 삼각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인체가 이러한 황금비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답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코끝의 높이는 코 길이의 3분의 2 정도이고, 코볼의 너비는 한쪽 눈의 길이와 비슷하며, 손가락 너비 곱하기 4는 손바닥 너비, 손바닥 너비 곱하기 4는 발바닥 길이, 손바닥 너비 곱하기 5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이며,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곱하기 4는 키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인체 비례는 오늘날 보아도 놀라운 만큼 정확해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인체는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제자와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선생님, 소포 왔는데요."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 머물던 어느 봄, 그의 작업실에 소포 하나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아, 드디어 왔구나, 왔어!"

소포 상자를 받아 든 레오나르도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는 소포를 안고 부리나케 작업실로 사라졌습니다. 콧노래를 흥얼흥얼 하면서 말이지요.

"대체 무슨 선물인데 저렇게 좋아하시지? 애인이 보낸 선물이라도 되나?"

제자는 문틈으로 가만히 작업실 안을 엿보았습니다.

"으아악!"

갑자기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공기를 갈랐습니다. 제자가 저도 모르게 지른 소리였지요.

"자네 거기 있었나? 그러고 있지 말고 어서 이리 와 나하고 두개골 좀 살펴보지 않겠나?"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제자는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둣 후다닥 달아났습니다.

"이 소중한 보물을 보고 놀라기는......"

레오나르도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제자는 왜 그렇게 혼비백한해서 달아났을까요? 바로 레오나르도가 해골을 두 손에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젊은 시절부터 사람의 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의 몸을 정확히 알아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좋은 조각을 만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가 스승 베로키오의 공방에 있을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해골이나 시체를 볼 기회를 얻으면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지금까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모나리자>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오늘 내용은 아래 도서의 내용을 수정없이 원문 그대로 인용 한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천재를 깊이 연구한 저자들의 글을 수정없이 전달하는 것이 여러분께 더욱 유익하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인용도서

1. 레오나르도 다빈치(웅진 생각쟁이 인물 22)

2. 레오나르도 다 빈치(강원히, 지경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