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삶의 마지막까지 확신을 지킨다는 것


   우리는 그간 물질적 성장에 기대어 미래를 구성하는 동력을 얻어왔다. 하지만 그 오래된 희망은 이제 그 효력이 제한적이다. 최소한 이미 높은 수준의 복지를 달성한 선진국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더 높은 수준에 대해 기대를 걸어볼 여지는 남아 있다. 이미 아이폰을 가진 사람이 더 나은 후속 모델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혹은 새 가스레인지를 사서 뿌듯해하다가 이웃집에서 5구 짜리 인덕션을 산 것을 보고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식의 소원 성취와 거기서 발생하는 행복감은 이미 말했다시피 아주  사소하고 단기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질적 안정을 포기하고 소위 '안분지족의 삶'을 찾아 저 멀리 어디론가 떠나야 할까? 용감하게 이미 이룬 것들을 모두 부수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마치 큰 전쟁이 일어난 이후처럼? 새로운 형식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개발할 수는 없을까? 물질적 풍요로움이 계속해서 증가하리란 기대가 아니라 다른 가치, 즉 넉넉한 시간, 풍요로운 영혼, 손상이 덜한 환경, 의미 추구 같은 데서 비롯되는 새로운 희망 말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이런 차원의 희망을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분적이지만 이런 식의 방향 전환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기업의 관리자들조차 이제는 외형적 성공만큼이나 내적 충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많은 심리학 연구를 통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행복과 삶의 기쁨을 경험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소중한 가치를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동력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도모하기가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대 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변혁이라도 저항과 반대를 피할 수 없다. 저항과 맞서는 과정에서도 확신을 필요하며, 에너지원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확신이 살아 있는 사례, 체코 출신의 극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바츨라프 하벨은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어떻게든 잘될 것이란 믿음이 아니라, 어떻게든 가치가 있으리란 확신이다. 그게 잘되든 말든 상관없이."

   하벨은 그러한 삶을  살았다. 공산당 집권 시절,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적 반체제 운동가였든 그는 확신 때문에 몇 번이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확신을 진실하게 지켰다. 1970년대에 그가 주도한 '77현당'은 시민운동에 불을 붙였고, 1989년 '대혁명'이 완수되기까지 그 불꽃은 계속 타올랐다. 그리고 바벨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흔들림 없는 희망은 무조건 헤피엔딩을 약속할까? 그렇다, 그리고 아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몰각은 체코와 슬로바키의 분단을 야기했다. 바츨라프 하벨이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고자 했던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건 만사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의미 있다는 확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확신을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



   '삐삐'를 탄생시킨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은 훌륭한 작가일 뿐 아니라 사리에 밝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 작품 속의 작은 영웅들은 간단한 방식으로 위대한 지혜를 표현할 줄 안다.


   고전이 된 그녀의 작품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Alla Vi Barn I Bulldrbyn》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마차 한 대가 앞질러 갔다. 마차가 지나가며 흙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킨 탓에 먼지를 뒤집어썼다. 모두가 기침과 재채기를 하며 불평을 내뱉고 있을 때 한 소녀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가 먼지를 나쁘다고 한 거야? 햇살이 비치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대체 누구야?" 그래 맞아, 하고 다른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누가 그런 걸 정하는 거야?"


   모르는 누군가가 그 어떤 것에 대해 미치 정해놓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이들은 글 자리에서 "앞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자"고 결정한다. 시험 삼아 먼지를 멋진 것으로, 햇살을 나쁜 것으로 여겨보기로 한 아이들은 이 놀이에서 재미를 느낀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 황당한 놀이를 이해하기도 전에 고개부터 흔들었지만,


   어쨌든 마을의 아이들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를 발견한 셈이다. 그건 바로, 우리의 만족감 혹은 불쾌감은 외부적 환경보다는 그 환경에 대한 내면의 평가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먼지가 짜증스러운 건 우리가 그걸 그렇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햇빛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전자기적 광선에 불과하다. 그걸 축복으로 여기는 건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한 검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햇빛 알레르기가 생긴다면 햇빛은 축복이 아니라 당장 피해 다녀야 할 지긋지긋한 적인 된다. 


   아이들이 알아차린 인식의 실체를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미 2000년 전에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동요케 하는 것은 사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다."